尙書의 追憶旅行

나의 寫眞 이야기

그저 昊天罔極일 따름입니다

李榮培 2018. 7. 3. 21:59

 

그저 昊天罔極일 따름입니다

 

일년 삼백 예순날이 어디 덧없는 날이 있을까만어제는 그중에서도 특별히 기억될만한 날이었다.7대에 걸쳐 외동아들로서만

대를 이어오던 우리 집안은그래서 크게 가까운 집안이 없다.

 

형제가 없는 외로움에 젖던 아버지는 그래서 아홉남매를 두셨고...위로 두분 누님밑으로 태어나신 長兄의 회갑이 올해다.

다들 모이기 쉬운 날짜를 잡는다는게 어제였다.석류의 자실(子室)속에 옹기종기 모여 언제까지나 도타운 정으로 의를 나눌

것만같던 형제들이 세월의 흐름을 탔다.

 

막내가 올해로 마흔넷이니.아무도 우리가 나이들어간다는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머리가 희여지고 이마엔 주름의 골이 생겼어도 생각의 끝은 옛날에 머물러있었다.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엄마가 생각이 났다.발길을 옮겨 지금은 낯선이가 사는 옛집으로 가보았다.

 

좁고 길던 골목은 너댓걸음으로 좁혀져있었고, 흙 뒤집어 쓰며 신나게 놀던 신작로는 이미 추억의 흔적을 씻은지 오래였다.

이웃이던 간판집 아주머니와 중국집 아주머니도 이젠 머리가 희끗해진 할머니. 내 살던때, 그때는 새댁들이었는데...

 

그리 오래 머물지못하고 되돌아 오는 길.영남루가 곁으로 스치고 지나간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나는 꼭 누각 앞마당에 자리한 충혼탑을 본다.

 

이유가 있어서다.중학교 2학년때였던가.고향출신 전몰군경들의 충절을 기리는 충혼탑은 그때 건립되었다.

탑신속에 나라를 위해 몸바친 꽃다운 영령들의 이름을 적어 넣게되었다.

 

모필 글씨를 잘 쓴다고 알려졌을까, 아버지께 의뢰가 왔다.아버지께서는 당신께서 지니신 모든 정성을 다해 마치 그

무엇을 모시듯, 한 장 한 장 방명록을 메워 나가셨다.

 

글 쓰시는 아버지 옆에서 잔심부름을 자주들던 나였기에 하는 말이지만 그렇게 전심전력하시는 모습은 그때까지 만나보기

어려운 일이었다.

 

한 사나흘쯤 지났을때였을까.방명록 전체명단의 반을 좀 넘게 썼을때였다.아버지께서 문득 나를 부르신다.

 

"야야..! 이 방명록은 세세 오랫동안 길이 보존될 것이니 너도 한 몫 남겨두어라."

 

어린나이의 내 글씨가 무에 그리 내놓을만 했으리요만자식의 글씨가 탓할만큼은 아니라 보셨던지....

 

내게 소중하고 값진 기회는 그렇게하여 생긴 것이었다.내가 쓴 필적(筆跡) 한바닥이 그 탑속에 들어있음을 다른이는 몰라도

나는 앎으로 혼자만의 느긋함과 아버지의 속깊은 배려를 되새김질하려 나는 영남루 앞마당에 있는 충혼탑을 본다.

 

그때마다 나의 뇌리속에는 그 무슨 광배(光背)가 나를 감싸고 있는듯 느껴진다.

 

그로부터 근 40년이 지난 지금 - 그리고 오늘 !불초(不肖)라는 단어가 왜 그리 크게 다가오는지 그저 고개를 들 수 없음 이다.

길이 호천망극(昊天罔極)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