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지서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는 비로, 현재는 돌담이 둘러진 비각안에 보존되어 있다.
사명대사의 충절을 기리고 있는 비로, 일명 ‘사명대사비’라고도 불리운다.
비는 네모난 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맨 위에 머릿돌을 얹은 구조로, 특이하게도 비몸은
까만 대리석을 사용하였다.
비문에는 표충사(表忠寺)의 내력, 서산대사의 행적, 사명대사의 행적 등을 4면에 고루 새겨
놓아, 서산대사의 제자이기도 한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당시 스승의 뒤를 이어 의병을 일으켜
활약한 사실, 가토 기요마사와의 담판내용, 정유재란 이후 선조의 어명을 받들어 일본에 건너가
포로 3천여명을 데리고 온 사실 등을 적고 있다.
조선 영조 18년(1742)에 세운 비로, 이의현이 비문을 짓고, 김진상이 글씨를 썼다.
앞면 윗쪽에 새겨 놓은 비의 명칭은 유척기의 글씨이다.
국가에 큰 어려움이나 전쟁 등의 불안한 징조가 보일 때에 비에서 땀이 흐른다 하여 ‘땀 흘리는
표충비 ’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는 사명대사의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지금까지 전해진 결과라
하여 민간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표충비가 땀을 흘린 기록을 보면
1894년 : 갑오군란 7일전 (서말
한되)
1910년 : 경술합방17일전에 (네말 여섯되)
1945년 : 해방 13일 전에는 (다섯말 일곱되)
1950년 :
6,25 발발 25일전 (서말 여덟되)
1960년 : 4,19 혁명당일 19시간동안 땀을 흘림
1961년 : 5,16 군사혁명
5일전에도(다섯말)
1979년 : 박정희 대통령 서거 5일전 오전6시부터 오후 4시까지 땀을흘림
1991년 : 4,17일 고르바초프
대통령 방문 1일전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땀을 흘림
1996년 : 강릉잠수함 무장공비 침투때도 땀을 흘림
2004년
: 2월, 6월, 9월에도 땀을흘림(노무현대통령 탄핵과 이라크 파병, 이라크에서 피살된 김선일씨와 관련)
흘린땀의 양을 잴 때에는 비석
바닥에 무명천을 깐뒤 이 땀을 짜서 그 양을 재었기 때문에 정확한 양의 수는
알수 없지만 상당량이 흘러 나온것은 사실이다,
↑ 삼비문
↑ 표충비 중문
↑ 홍제사 들어가는 입구..바로 옆자리에 위치한 홍제사에서 표충비각을 관리하고 있다고...
↑홍제사 표충각
↑ 홍제사 표충각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내외분 영정이 모셔져 있다.
↑ 중문 뒷편으로 표충비각이 보인다.
↑ 표충비각
↑ 무안리 향나무 수령이 300년쯤 되였으며 표충각비 바로 앞쪽에 있다.
↑ 홍제사 설법보전
↑ 홍제사 요사
↑ 홍제사 삼층석탑